‘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을 읽게 된 계기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은 장석주 작가의 에세이다. 도서관 책장 사이를 어슬렁거리다 우연히 발견한 책이었다. 그날 빌린 네 권의 책 중 가장 먼저 손길이 갔다. 요즘 내 나이대의 일반적인 삶과는 조금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 작년 가을 척추를 다쳐서 몇 개월을 누워서 지냈다. 지금은 조금 나아져서 일상을 조금씩 회복하고 있지만 아직 사회로 복귀하지 못한 채, 조금 느린 삶을 살고 있다. 아파서 누워있으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주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였다. 행복이 무엇이기에, 사람들이 그토록 희망하는지, 왜 가까이 느끼지 못 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궁금했다. 장석주작가의 에세이를 읽으며 조금 힌트를 얻은 것 같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의 문장
책을 읽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책이 300페이지 가까이 되어서도 그런데, 묘하게 문장 하나씩 읽어 내는 속도가 나질 않았다. 그렇다고 어려운 문장인가? 아니었다. 글마다 작가의 소소한 일상과 감정이 섞여 있었다. 문장을 읽을 때마다 나의 생각을 돌이켜보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곱씹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2/3쯤 읽었을 때, 반납기일이 되었다. 책을 반납하러 가는 길에 책을 읽었다. 도서관 문 앞에 도착해서도 다 못 읽었는데, 아무래도 끝까지 다 읽고 싶어졌다. 반납한 책을 다음날 다시 빌렸다. 끊긴 부분부터 끝까지 읽었다.
책 속에서 좋았던 문장을 꼽으라면 책 자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문장이 아름다웠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헤르만헤세의 문장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장석주 작가의 문장은 담백하면서 섬세하고 사실적이면서도 감성적이었다.
서문 ‘행복을 꿈 꿀 권리’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돈이 없어 접었던 꿈들, 배고픔, 죽음과 이별, 나를 스쳐 간 많은 기회들... 하지만 불행이 나를 시인으로 키웠어요. 행복했더라면 시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겠지요. 불행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고, 불행을 겪는 가운데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도 커졌어요. 불행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뜻이지요. (중략) 쓴 맛을 아는 혀가 단맛에 더 예민해지는 법이지요. 혁명 직전에 희망이 부풀고, 혁명의 달콤함이 최대치에 이릅니다.
불행은 끈덕지고 길지만, 행복은 번개와 같이 찰나를 스치고 지나가지요.
행복의 찰나는 너무 짧아서 그걸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주 놓치곤 했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을 키운 것은 불행이었다고. 불행이 준 공감력, 세상과 타인을 보는 관점이 결국 그를 시인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불행이 없었다면 현재의 소소한 행복을 행복이라고 느낄 수 있었을까. 행복은 찰나의 순간이기에, 불행에 함몰되면 행복을 인지하지 못하고 놓칠 수 있다.
이 세상이 온전하도록 지탱하는 것은 말만 많은 정치가가 아니라 어머니와 아버지다.
겨울 새벽에 아궁이에 불을 피우고, 낙엽과 눈을 치우며, 가축을 돌보는 이들, 아침 일찍 은행과 관공서에서
업무를 시작하는 이들, 우편물을 배달하고 이삿짐을 나르며 화재 현장에 달려가 불을 끄는 사람들.
이들이 하루를 열고 일과를 시작해야 세상의 일들은 정상적으로 돌아간다.
이 문장을 읽을 때, 마음이 몽글몽글 해 지면서 눈물이 날 뻔했다. 어릴 적, 새벽마다 방바닥이 따뜻해지던 온기와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쩌면 평범한 부모들이 이 세상뿐만이 아니라 자식들의 삶까지 지탱하는 것은 아닐까. 말만 번지르르한 정치가들이 꼭 마음에 새겼으면 하는 문장이었다. 물론 그들도 누군가의 부모이고 자식이니 잘 알 것이다.
비움은 욕망과 필요를 덜어내는 일이다. 열매를 솎아 줘야 남은 열매가 실해진다.
내 안의 욕심을 덜어야만 비울 수 있고, 비워야만 얻을 수 있다. 가득 차 있는 자는 그 무엇도 채울 수 없다.
비우려면 제대로 비워야한다. 나 역시 말로는 비웠다고 하면서 숨겨둔 욕망이 한 가득이다. 남들보다 뒤쳐질까 봐, 자꾸 마음이 조급해지고 두렵다. 더 비워야겠다. 비워야 한다는 마음까지도.
목마름을 해결하는 데 바다가 필요하지 않듯이 행복에는 큰돈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갈증 날 때는 한 잔의 물이면 충분하다. 행복도 아주 작은 것들로 충분하다.
행복에 필요한 것은 건강한 신체, 한 줄의 지혜, 보온력이 좋은 양말이면 충분하다.
아프고 나서 가장 공감되는 문장이었다. 행복에 필요한 것은 정말 건강한 신체다. 솔직히 몇 달 간은 나를 위해 밥을 차려주는 사람이 있어 고맙고, 따뜻한 말을 건네주는 것도 고마웠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스스로 화장실에 갈 수 있는 것조차 행복이었고 예전처럼 멀쩡하게 걸을 수 있는 것도 고마운 일이었다. 어찌 보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고맙다. 살아있으니까, 행복도 느낄 수 있으니까.
일을 할 때는 가진 것 모두를 쏟아 부을 기세로 일에 전념하고, 글을 쓸 때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쓸 각오를 해야만 한다. 무엇을 하건 적당히 끝내는 것은 '절반'에만 매달리는 것이다.
'절반의 인생'만으로 온전한 삶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가장 반성하게 되는 문장이었다. 나는 전력투구하지 않았다. 적당히 하면서 최고의 성과를 원했고,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실망했다. 당연한 결과인데도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정작 부당한 것은 절반만 하고는 최고의 성과를 기대한 내 마음이었다. 온전한 삶을 잡기위해 전력투구를 해야겠다.
읽기는 타인의 사유와 경험을 취함으로써, 내 좁은 사유와 유한한 경험의 영역을 확장하는 일이다.
펼쳐진 책은 의미의 바다고, 책은 우리를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세계로 이끈다.
나는 책이 참 좋다. 몇 년 전부터 책읽기가 습관이 된 것이 정말 좋다. 어릴 때는 책읽기 밖에 할 것이 없어서 책을 읽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친구들, 동료들과 밖에 나가 노는 것이 좋아 자연스럽게 책과 멀어졌다.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30대 중반부터였는데, 항상 책을 가지고 다니고, 억지로라도 읽는 습관을 들이다보니 자연스럽게 다시 가까워졌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경험들을 하게 되었고, 새로운 분야들도 알게 되었다. 누가뭐라해도 책은 가장 좋은 평생친구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을 읽고 난 후
나도 이런 문장을 쓰고 싶다. 감히 이런 생각을 했다.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확실하게 이야기하지만 강요하거나 윽박지르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지만 따뜻하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힘들지만 성실하게 삶을 살아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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