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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일의 기쁨과 슬픔_장류진 작가

장류진 작가의 소설은 잘 정제된 설탕 같다. 문체가 깔끔하고 담백하며 신선하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장류진작가의 단편소설 8개를 엮은 책이다. 각각의 소설들은 다르지만 결국 하나로 이어져 소설의 의미를 곱씹게 된다. 하나를 읽으면 다음 하나가 궁금해진다. 처음엔 내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며 읽다가 결국은 딱하게 여긴 주인공이 바라보는 누군가, 우월감의 대상이 되는 그가 나처럼 느껴졌다. 

 

장류진소설책 일의 기쁨과 슬픔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으면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마주쳤던 상황, 사람들의 모습이 겹쳤다. 언젠가 내가 했던 생각, 마주했던 상황이 고스란히 기술된 이 책을 읽으며 공감과 분노, 웃음과 굴욕을 맛보았다. 

 

 

[일의 기쁨과 슬픔] 소설 속 이야기와 나의 생각

나는 언니의 프로필 사진을 볼 때마다 대체 왜 저렇게 하지, 하고 생각했다. 정말 왜 저렇게 할까.  나라면 그러지 않을 텐데. 하루에도 몇 번씩 회사 사람들과 메신저로 업무를 주고받는데. 거기에 남자친구와 얼굴을 맞대고 있는 사진이 떠 있으면 얼마나 프로답지 못해 보일지, 한 번쯤 생각을 해볼 텐데. 

'나'는 언니가 아니기에 언니를 이해할 수 없다. 현실 속 나도 그렇다. 그러나 현실에 소설 속 '언니'같은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그 사람들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이상한 것은 아니다. 그저 타인일뿐.

 

사실 회사에서 울어본 적이 있다. 거북이알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등 뒤에서 들려오는 케빈의 한숨 소리가 너무 신경 쓰여서 찰나의 순간만큼 짧게 운 적이 있었다. 화장실 무늘 발로 세게 걷어차던 순간이었다. 문을 탕, 하고 걷어차는 순간 와륵, 눈물이 났고 그게 다였지만, 그걸 울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누구에게나 을이었던 시절이 있을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한 번쯤 울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누가 대놓고 뭐라 하지 않았지만 억울하고 분해서, 자신이 초라해 보여서 아무도 모르게 눈물 흘려본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이 소설에 공감할 수 있다. 

 

그녀는 금요일에 격주가 아니라 매주 와달라는 집이 있어서 우리 집에는 더 이상 못 오겠다고 했다. 분명히 아주머니는 그만두게 하려고 했었는데, 내 입에서는 왜인지 "저희 집도 매주 오셔도 돼요. 다음 주부터 매주 오세요." 하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업체와 이야기가 끝났다면서 심지어 지난주 금요일에는 이미 그 집에 첫 출근을 했다고 말했다. 우리 집에 마지막 출근을 하려고 그 집에 특별히 하루만 양해를 구하고 왔다는 것이었다. 

그만두게 하려던 도우미 아주머니가 막상 그만둔다고 하자 오히려 내가  아쉽다. 내가 갑인 줄 알았지만 결정권은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있었다. 장류진 작가 특유의 반전은 현실적이어서 묘하게 약 오르는 느낌과 통쾌한 느낌이 동시에 든다. 

 

이천 원만 쓸 생각이었지, 사천오백 원이었으면 애초에 들어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거였다. 다시 나갈까. 하지만 유리문 밖 세상은 너무나 더워 보였고 저 땡볕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손에 쥐지 않은 채로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대답했다. "그냥 아이스로 주세요."

그런 경우가 있다. 음료 무료 쿠폰이 생겨 방문했는데 주말만 사용 가능하다거나 특정 시간에만 살 수 있다 거나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슷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사기당했다는. 주인공'나'가 말하는 '그냥 아이스로 주세요'에는 체념과 인정, 결단의 복잡한 심정이 담겼다.   

 

이 책을 읽은 후 장류진 작가는 나에게 믿고 읽는 작가가 되었다. 나도 저렇게 글을 쓰고 싶단 생각도 들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현실적인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