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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소설가의 일

김연수작가의 에세이 '소설가의 일' 표지

제주도에서 북스테이를 한 적이 있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가의 일'은 그곳에서 우연히 읽게 된 책이다. 여행의 막바지에 숙소 책장에서 발견했다. 일정이 맞지 않아 결국 다 읽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자꾸 생각났다. 온라인서점에서 주문해 끝까지 읽었다.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읽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김연수작가의 글쓰기

김연수작가는 작가가 된 때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글을 쓰면서 획기적으로 앞으로 나아가지도, 급격히 나쁜 상황에 빠지지도 않는 세계 속에서 별다른 희망이나 두려움도 없이 마치 그 일을 하려고 태어난 사람처럼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시를 썼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마음에 드는 글을 쓰고 나면 그건 도무지 내가 쓴 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나는 새로운 사람, 즉 신인이 됐다. 지금도 누군가 신인이라고 하면 가슴이 설렌다. 그건 마치 매일매일 획기적으로 나아지거나 갑자기 나빠지지도 않았던 그 맛을 결국 영원토록 잊지 못하게 됐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고, 평생을 다 보내고 뒤늦게 발견한 시가 너무 좋아서 밤낮없이 시를 쓴 끝에 일흔 살 할머니가 마침내 신인으로 등단했다는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소설가의 일'이란

김연수 작가는 우주에서 소설가로 산다는 의미를 '여러 번 고칠수록 문장이 좋아진다는 걸 안다'는 뜻이라고 했다. 누군가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라고 한다면, "먼저 글을 썼고, 지금은 그 글에 대해 생각하면서 다시 쓰고 있습니다".라는 뜻이어야 한다고 말이다. 말하자면 글을 쓰고 생각하고 여러 번 고치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 소설가의 일이라는 것이다. 여러 번 고쳐 쓰면 반드시 문장이 좋아진다. 문장이 읽혀야 내용도 읽힌다. 현재에도 잘 읽히고 미래에도 읽을 수 있는 문장, 그것이 소설가가 써야 할 문장이다. 소설은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질 수 있는 단어들로 문장을 쓰는 일이다. 생각이 아니라 감각이 필요하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뭐가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지, 어떤 냄새가 나고 어떤 맛이 나는지 자신에게 묻는 연습을 해야 한다. 자기가 지금 보고 있고 듣고 있고 만지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떤 냄새와 어떤 맛이 나는지 써야 한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성장한다는 것이다.

만일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어떤 시도도 하지 않는다면 상처 받을 일도 없지만 성장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시도하면 어떤 식으로든 성장할 수 있다. 심지어 무언가를 시도했으나 무엇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조차도 성장한다. 그러니 소설을 쓰고 싶다면 일단 써보자. 그러고 나서 계속 쓸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자. 마찬가지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일단 시도해 보자. 해보고 나면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달라져 있을 것이다. 결과가 아니라 변화에 집중하는 것이 핵심이다. 영어로 'page-turner'는 너무나 흥미진진해서 마구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는 책을 뜻한다. 이 단어 풀이를 다시 해 보자면, 주인공과 완벽하게 감정이입된 독자의 앞에 놓인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김연수작가의 '소설가의 일'이 나에겐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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