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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채사장 작가의 책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표지

꽤 오랫동안 눈에 띄었다. 그럼에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은 작가이름 때문이었다. 채사장이라니. 채소가게 사장도 아니고 장난 같아서. 지금은 어떤 책이었는지 기억나지도 않는 다른 책에서 이 책을 쓴 작가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을 보고 한번 읽어나 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평소엔 도서판매 사이트에서 여러 권의 책을 한꺼번에 사지만 이번엔 딱 한 권만 샀다. 사놓고 얼마간 전시(?)를 해 두었다. 작가의 이름도 책 제목도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이 책을 읽게된 시점은 몇 년간 꽤 깊게 마음을 나누었던 친구와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은 때였다. 마흔 가 가운 나이가 되도록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 줄 몰랐다.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는 묘한 제목이, 작가의 이름이 '채사장'이라는 웃긴 이 책이 이런 내용일 줄 몰랐다. 책을 읽을수록 이 책이 나의 상처 난 마음을 보듬어주는 것 같았다. 누군가 덤덤한 표정으로 내 옆에 앉아 울고 있는 나를 가만히 바라봐주는 듯 느껴졌다. 참 따뜻했다. 위로가 되었다.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속 좋은 문장들

무언가를 이해하려면 그것 밖으로 걸어 나가서, 그것에서 벗어난 뒤 다른 것을 둘러봐야만 한다. 그것은 비단 입시뿐만이 아니다. 전공이 되었든, 업무가 되었든, 모든 지식은 그것이 아닌 것들로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모든 지식은 그것이 아닌것들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사건이나 상황 속에 파묻혀있으면 상황을 올바르게 파악하기 힘들다. 사건이나 상황을 객관화하고 한 발짝 물러나서 보아야 전체가 보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헤어짐이 반드시 안타까운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실패도, 낭비도 아니다. 시간이 흘러 마음의 파도가 가라앉았을때, 내 세계의 해안을 따라 한 번 걸어보라. 그곳에는 그의 세계가 남겨놓은 시간과 이야기와 성숙과 이해가 조개껍질이 되어 모래사장을 보석처럼 빛나게 하고 있을 테니. 

시간이 조금 지나고 알게되었다. 우리가 함께 보냈던 시간이 얼마나 찬란했었는지, 얼마나 소중한 경험이었는지. 살면서 문득 생각나고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나에게 꼭 필요한 사건이었다고 여겨진다. 그로 인해 나는 좀 더 신중하고 성숙한 어른이 되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조개껍질이 되어 어딘가 모래사장에서 반짝이고 있을 것이다. 

 

당신 앞에 세상은 하나의 좁은 길이 아니라 들판처럼 열려있고, 당신이 보아야 할 것은 보이지 않는 어딘가의 목표점이 아니라 지금 딛고 서 있는 그 들판이다. 발아래 풀꽃들과 주위의 나비들과 시원해진 바람과 낯선 풍경들.

보이지 않는 이상향의 세계를 꿈꾸기보다 현재에 충실하며 소소한 행복을 쌓으면서 살고싶다.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미래의 무엇도 소용없음을 안다.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작은 행복들을 쌓아 행복하고 즐거운 사람으로 지내고 싶다. 매일 새로운 풀과 꽃을 발견하며 그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삶을 살고 싶다.

 

책은 불안을 잠재운다. 당신도 느꼈을 것이다. 세상 사는 일에 치이고 머릿속이 복잡하고 신경이 예민해져 있을 때, 책 읽을 겨를이 없다며 핑계 댈 것이 아니라 도서관에 가서 몇 권을 골라보자. 그리고 안 읽히는 책은 쉽게 지나쳐 보내고, 힘들이지 않고도 읽히는 책을 힘들이지 않고 읽어보자. 그 짧은 시간 동안 마음의 불안은 점차 가라앉고 머릿속의 안개는 조금씩 걷히게 될 것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당신의 내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엉킨 실타래가 풀리며 언어로 정리되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 내면의 엉킨 실타래가 풀리며 언어로 정리된다는 표현이 너무 좋았다. 책을 가까이하고 꾸준히 읽은 지 4년째다. 마음이 힘들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습관적으로 책을 읽었다. 처음에는 좋아하는 분야의 책만 읽다가 점차 분야가 확장되었다. 가기계발에서에 문학으로 문학에서 경제로 경제에서 심리학으로.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내 생각의 폭도 넓어졌다고 느낀다. 일상의 틀에 갇히기보다 그것을 뛰어넘어 좀 더 크고 넓게 보고 판단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면서 불안도 줄어들고 일상이 긍정의 언어로 채워졌다. 

 

나는 이제 우리가 자기 안에 우주를 담고 있는 영원한 존재임을 안다. 당신이, 그리고 내가 바로 그것임을 안다. 우리는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거울에 비추어보듯 희미하게나마 관계의 끈을 잇고 있지만, 무한의 시간이 지난 먼 훗날의 어느 곳에서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반갑게 마주할 것이다. 

작가는 독자과 본인 스스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결국 언젠가는 만나게 된다고. 나와 관계가 틀어진 친구와도 그럴까. 우리는 다 이어져 있을 테니까. 모두가 행복하길 바란다. 언젠가 얼굴을 맞대고 반갑게 만날 그날이 올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