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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소설_빛의 과거(은희경작가)

은희경작가의 소설 '빛의 과거' 표지

이야기의 주인공 유경이 친구 희진이 쓴 소설을 읽게 되면서 시작된다. 같은 시공간을 공유했지만 전혀 다르게 묘사된 희진의 기숙사 생활을 읽으며 유경은 자신의 기억을 되짚어본다. 유경은 70년대 어느 기숙사와 2010년대를 넘나들며 어떤 과거를 회상했다. 내가 기억하는 과거는 타인이 기억하는 과거와 다를 것이다. 그것은 주인공 유경이 희진을 무작정 미워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빛의 과거]에 들어있는 시대상

소설 속 1977년 이야기는 대학 신입생시절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타의에 의해 임의로 배정된 4인실 기숙사 룸메이트들이 서로에게 주고받는 경험은 거대하다. 주인공 유경의 시점으로 서사가 진행된다. 그 외에도 같은 방을 쓰는 룸메이트들 3명과 유경과 친하게 지낸 다른 방 친구들까지 다양한 여성의 이야기가 다채롭게 이어진다. 그래서 다양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빛의 과거]에는 특히 1970년대의 시대상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학생들은 독재 정권에 맞서 전단들 돌리고, 어용 총장 임명에 항의해 검은 리본을 달았다. 고등학교 교련시간에는 군사훈련을 했고 버스표를 사러 갔을 때조차 위협을 당했다.

반면 과자와 과일로 차려놓은 기숙사 입사환영식과 문학작품 주인공의 이름으로 미팅파트너를 정하는 방법, 방송 '밤과 음악사이'와 '대학가요제', '음악감상실' 같은 시대의 대표 고유 명사들은 그 시절의 추억을 불러 일으킨다. 나에게는 낯설지만 여러 매체를 통해 익히 들어왔던 것들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기숙사 전화였다. 휴대전화가 없었던 시절이기에 기숙사 전화기 한 대가 200명이 넘는 기숙사생의 연락을 책임졌다는 사실. 가족과 친구와 연인에게 걸려오는 한 통의 전화가 얼마나 절실했을까 생각하면 짠하면서도 웃음이 난다. 

 

 

[빛의 과거]속 인상 깊었던 구절

그러나 그런식으로 자신의 사는 모습을 드러내 보이며 살 수 있는 사람은 소수였다. 안 보이는 대다수는 어딘가에서 각기 다양한 모습으로 자기 몫의 삶을 살아내고 있을 것이다. 오래전 국사 강사의 말을 조금 바꿔보자면 행동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불만스러운 세상에 적응하려고 애쓰면서 말이다. 나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행동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불만스러운 세상'이란 표현이 정말 날카로웠다. 현재가 불만족스랍 다면 행동해야 한다. 행동해서 만족스럽게 바꿔 나가야 한다. 

 

"진실이 어디 있어. 각자의 기억은 그 사람의 사적인 문학이란 말 못 들어봤니?" 그녀는 그 문장을 쓴 영국 작가의 책애서 한 줄을 더 인용했다. "우리가 아는 자신의 삶은 실제 우리가 산 삶과는 다르며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나대로 최근에 읽었던 책의 구절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오래 전의 유성우로 지금 존재하는 커다란 호수를 설명할 수 있다."

사람의 생김새가 다르듯 각자가 품고있는 생각도 다 다를 것이다. 내가 이해한 것이 상대가 이해한 것과 같지 않을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어차피 우리는 같은 시간 안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이었고 우리에게 유성우의 밤은 같은 풍경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책에서 말하듯 과거의 진실이 현재를 움직일 수도 있다. 과거의 내가 나 자신이 알고 있던 그 사람이 아니라면 현재의 나도 다른 사람일 수밖에 없다. 

유경이 기억하는 과거와 희진이 기억하는 과거가 다르듯 각자의 시선으로 기억할 수 밖에 없다. 각자가 보는 같은 시간, 같은 장소의 밤 풍경도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는 나와 타인이 보는 나도 다른 사람일 수 있다. 이 사실은 무섭기도, 특별하기도 하다. 

 

[빛의 과거]를 읽게 된 계기와 그 후

홀로 휴가를 떠났을 때, 창밖으로 망망대해가 보이는 숙소에 묵었다. 낮에는 하루종일 바다를 바라보다가 밤엔 책을 읽었다. 숙소 책장에 꽂혀있던 책 중 한 권이었는데 이야기가 흥미진진했다. 두시간 반을 읽다 잠들었다. 다음날 늦잠을 잔 탓에 퇴실시간이 되어 이어 읽을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동네 도서관에 대출 대기예약을 걸어 겨우 그 책을 빌렸다. 첫 장을 펼 진치 두 달 만에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소설을 다 읽고 난 뒤에도 어떤 생각이 머릿속을 굴러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