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는 손원평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2017년 출간되었으며 출간 5년 만에 국내 판매 100만 부를 기록하였다. 주인공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이다. '감정'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로 주인공은 물론 다양한 인물들이 타인과 관계를 맺고 슬픔에 공감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다. 청소년은 물론 성인들에게도 필독서로 꼽힌다.
소설 아몬드의 윤재와 과거의 나
스무 살 무렵 겨울이었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가는 중이었다. 얼마 전 내린 눈이 차바람에 얼어붙어 있었다. 천호역 1번 출구를 나온 순간 찬바람이 온몸을 파고들었다. 목도리를 단단히 여미고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큰길 대신 어둡지만 시간이 덜 걸리는 골목길을 택했다. 한강 쪽에 가까워질수록 바람이 더 찼다. 온몸을 굼뱅이처럼 굽히곤 땅만 보며 걸었다. 그러다 멈춰 섰다. 눈앞에 누군가가 미동 없이 누워있었다. 죽은 건가? 자는 건가? 몸을 숙여 가까이 보니 40대로 보이는 남자였다. 멀끔한 정장을 입었고 소주 냄새가 훅 났다. "아저씨, 여기서 주무시면 큰일 나요." 그의 어깨를 살짝 잡고 흔들었다. 그는 눈을 히끄무레하게 떴다 감았다.
휴대폰을 꺼내 112에 전화를 걸었다. "길에 쓰러져 자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전화를 끊고 경찰이 올 때까지 주변을 어술렁거렸다. 10분 정도 지났을 때 경찰차가 왔다. 다시 손을 코트 주머니에 찔러 넣곤 발걸음을 옮겼다. 그게 뭐라고, 잘한 일이라고 마음에 뿌듯함이 삐죽 올라왔다.
현재 나의 아몬드는 초록불일까?
손원평 작가의 장편소설 '아몬드'를 읽으며 그때의 나를 떠올렸다. 꽤나 감정에 충실했었다. 나름대로 사회와 사람들에 공감하며 살았다. 길을 걷다 무거운 짐을 든 할머니를 도왔고 유모차를 밀며 힘겹게 마트 문을 여는 여자를 슬쩍 도왔다.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쓰레기를 주웠다. 관찰자 이전에 상황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겠다. 지금은 좀 달라졌다. 상황에 뛰어들기보다 관찰자의 입장을 고수한다. 괜히 나섰다가 나에게 피해가 오면 어쩌나, 누군가 나서겠지 하는 마음이 크다. 책을 읽으면서 소설 '아몬드'의 이야기 속 현장에 내가 있었으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다. 그 중 한 명이 나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주인공 윤재의 감정과 공감이 결여된, 무감각이 현재의 내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나의 아몬드에 초록불을 켤 사람은 결국 나다.
이야기의 흡인력이 좋아서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윤재의 아몬드에 초록불이 들어오길 기대하면서. 어쩌면 나의 아몬드에 초록불이 들어오길 기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윤재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아몬드의 초록불을 켰다. 스스로 겪어내면서.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아몬드가 있다. 결국 자신의 아몬드에 초록불을 켤 사람은 자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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